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딸 애의 대학 입시 기록
    Life 2023. 2. 2. 14:37

    고1 여름 방학이 지날 무렵 딸애가 공부를 완전히 놓아 버렸다. 애가 닳은 와이프는 어떻게든 공부 시키려고 얼레도 보고 달래도 봤지만, 소용 없었다.

    공부가 너무 싫다고, 도저히 못하겠다는데 어쩌겠나...

    초등학교, 중학교 때도 애가 공부를 좋아한 적은 없었다. 그 때는 그나마 애가 어려서 엄마 말을 들었던 거였고 그래서 어떻게든 공부를 시킬 수는 있었던 것 뿐이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더이상 엄마 말을 듣지 않았다.

    공부를 주제로 매일 매일 벌어지는 엄마와 딸의 싸움... 누구도 편들지 못하고 옆에서 지켜보는 아빠... 

    아빠 역힐이 쉽지 않구나 하고 많이 느꼈다.

    애가 저렇게 싫어하는데 그냥 좀 놔두라고 수차례 와이프를 설득했지만, 공부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와이프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점점 무기력해졌고, 휴일이면 하루종일 침대와 혼연일체가 되어 누워 있었다. 

    좀 일어나서 움직이라고 하면 너무 힘들어서 못 움직이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이 아니였나 싶다)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가던 어느날 아침에 아이를 등교 시키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공부가 인생에 전부는 아니야, 너가 공부하는게 너무 싫으면 하지마... 인생 길고 공부 안해도 할 일 많아.."

    가만히 듣고 있던 딸 애가 한참만에 힘들게 대답했다.

    "아빠, 나 공부 안하면 뭐해?"

    이번에는 내가 대답할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의 너무나도 평범한 고등학생 부모답게 난 공부 외에 어떤 대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와이프랑 머리를 맞대고 딸이 내준 숙제를 풀기 시작했다. 우리 딸이 공부를 안하면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끝에 나온 답안 중 하나가 태권도였다.

    아이가 몸은 약했지만 중학교 때는 운동하는 걸 좋아했었고 가끔 기분이 좋을 때면 유튜브에서 배운 이단 옆차기를 시전하곤 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사실 그게 다였다. 대한민국 초등학생이면 대부분 다니는 태권도장에서 놀이삼아 배운 태권도가 전부였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인터넷을 뒤져 집 근처에 입시 태권도 학원을 찾았고 딸 애를 데려가 상담을 받았다.

    태권도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해본게 전부고 그 사이에 다른 운동을 해본적도 없다는 딸애를 보며 사범은 시큰둥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애가 체형도 좋고 유연성도 어느정도 있어서 시작은 해볼 수 있다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공부가 안돼서 뒤늦게 대안을 찾아오는 학생이 우리 딸만은 아니였고, 그런 애들 대부분 2~3일도 못 버티고 나간다고 했다.

    사범이 이야기 해준 아이들 운동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평일은 매일 4시간 이상, 주말은 최소 10시간 이상 이었다.

    매일 침대에만 누워있던 애가 할만한 수준이 아니였다. 그렇게 상담을 받고 돌아오는 차 안...

    뒷자리에서 생각에 잠겨있던 딸애가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솔직히 의외였다. 못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이야기 해준 딸애가 고마웠지만, 냉정하게 이야기 해야 했다.

    맨날 침대에 누워만 있다가 운동하려면 정말 힘들꺼라고.. 그래도 하겠냐고.. 하겠단다.

    그렇게 딸애의 태권도가 시작됐다.

    도장에 하겠다고 연락했더니, 다른 친구 도복을 빌려 줄테니 도복을 사지 말란다. 며칠하고 그만두면 돈 아깝다고... 심지어 교육비도 안받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태권도장에 친구들은 우리 딸애를 보고  며칠만에 그만둘지에 대해 내기를 했단다. 가장 많이 본 친구가 일주일 정도였단다.

    3일인가 지났을 때는 애들끼리 모여서 걱정했다고 한다. 딸 애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혹시 쓰러져 죽는거 아니냐고..

    그리고 그 맘때쯤 딸애가 나에게 그만두겠다고 했다.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사범 말이 정확했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못 하겠다는 애를 설득해서 태권도장을 데려가며 정말 많은 이야기를 딸과 나눴다.

    포기할 때 포기하더라도 3개월만 해보자고, 3개월을 했는데도 하기 싫고 힘들어서 못하겠으면 그때는 다른 대안을 찾아보자고...

    무슨 일이던 3개월은 해봐야 정말 자기랑 맞는지 알 수 있는 거라고, 지금 힘든거는 당연한거고 이렇게 며칠만에 힘들다고 그만두면 너는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그렇게 1주일만 더가 2주일이 되고, 2주일만 더가 한달이 되었다. 

    어깨까지 내려왔던 딸아이의 다크써클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고, 여전히 힘들다고 했지만 더이상 안하겠다는 말은 하지않게 되었다.

    딸 애의 중도 포기에 내기를 걸었던 아이들은 모두 내기에서 졌고, 도복도 맞췄고, 원비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태권도가 아이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사범한테 혼나고, 다른 아이들이 비웃어도 꿋꿋하게 이겨냈다.

    그렇게 2년이 지났고, 대학을 가야하는 시간이 되었다.

    사실, 와이프랑 나는 애가 대학에 못가도 상관없었다. 만약, 태권도를 시작안했다면...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 조차 두려웠다. 대학은 당연히 못 갔을 테고, 우울증이 심각하게 왔을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고 2년 만에 딸 애의 몸은 누가 봐도 운동 선수의 몸으로 변해 있었고, 우리집에서 가장 많이 먹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건강해진 딸애의 그 모습만으로도 감사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이 어떻든 간에 딸 애는 태권도로 유명한 대학에 꼭 가고 싶어했다. 

    나도 그러길 간절히 바랬지만, 태권도를 한 기간도 짧고, 우리에게는 그 흔한 발차기도 보여주질 않아서, 와이프랑 나는 딸 애의 실력을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학을 못가도 어쩔 수 없고, 가더라도 태권도 학과가 있는 아무 대학이라도 합격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딸애대한 믿음이 약했나 보다.)

    며칠전 딸애가 보란듯이 자기가 가고 싶은 대학에 합격증을 받아왔다.

    살면서 그렇게 기뻤던 순간이 정말 몇 번 없었던 것 같다. 백퍼센트 확신을 갖고 이야기 하면, 내가 대학에 붙었을 때도 그렇게 기쁘지는 않았었다.

    딸 애는 신나서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고, 와이프와 나는 둘이서 조촐히 축하 파티를 하며, 그 간의 고생과 성취와 그녀가 우리에게 준 감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딸 애의 인생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아마도 또 다시 많은 어려움을 만날꺼다. 하지만, 이 성공의 경험이 토대가 되어 앞으로 만날 많은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또 다시 성공의 경험을 쌓기를 기도해본다.

    고생했고 축하한다. 딸아, 그리고 사랑한다.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년 회고  (1) 2023.01.06
    코로나(COVID-19)로 인해 바뀐 것들  (0) 2020.09.07
    떠난 보낸 코드를 바라보는 마음...  (0) 2013.09.25
    8월에 읽은 책  (0) 2013.09.10
    독서의 적  (1) 2013.08.06
Designed by Tistory.